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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문화와 벤처문화의 융합

시칠리아노 2003. 12. 17. 22:21
대기업을 중심으로 많은 기업들이 인터넷사업 중심으로 재편되거나 신규사업을 추진하였고 테헤란밸리를 중심으로 벤처기업이 활성화되면서 테헤란밸리는 전국에서 가장 교통체증이 심한 도로로 각인된지 이제 2년 정도가 지났다. 최근의 테헤란밸리를 조용히 주목해 보면 여전히 교통체증이 심하고, 굴뚝기업들 역시 닷컴기업을 육성하고 있지만 예전의 활기와 비전이 넘쳐 흐르지는 않는 듯하다. 닷컴기업들의 위기를 수익모델의 부재 혹은 잘못된 사업모델로 실패를 담보로 시작된 불안한 출발이라고 단정짓기에는 뭔가 부족함이 많다. 굴뚝기업들은 인터넷기업으로 전이되지 않았음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먼저 인터넷기업을 선언한 굴뚝기업들은 사업을 재정비하는 등, 성공을 자부하는 굴뚝문화 태생의 인터넷기업도 그다지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수익모델과 사업모델 (Business Model)의 불완전이라는 요건 외에도 분명히 실패의 원인에는 뭔가가 있어 보인다. 필자는 그 부족한 영역을 굴뚝문화와 벤처문화의 융합 부족이라고 생각한다.

벤처문화가 필요한 굴뚝기업
인터넷기업으로 아직 전이하지 않았음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굴뚝기업이 있다면 기업전략 수정이 필요하다. 인터넷기업으로의 전이가 굴뚝사업을 접고 인터넷사업가가 되라는 뜻은 아니다. 인터넷은 그 목적에 따라 기업의 굴뚝사업을 도와 줄 추가적 유통채널 역할을 할 수 있으며 혹은 온라인에서 수익이 확보되지 않더라도 기존 사업상의 고객만족을 도와 줄 목적이거나 온라인을 이용한 원가절감을 통한 경쟁력 확보 등 굴뚝기업 역시 인터넷기업으로의 전이가 필수적이다. Intel의 Andy Grove 회장이 LA Times지 기자회견을 통해 전달한, “향후 인터넷기업이라는 단어는 사라질 것이다. 모든 기업이 다 인터넷기업이기 때문이며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기업은 타 기업에 흡수 합병되거나 사라질 것이다”라는 메시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굴뚝기업은 더 큰 굴뚝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e-rise 또는 e-Transformation 과정을 거치게 되며 이 때 도전적이고 미래지향적 벤처문화가 필수적이다.

광산에서 금을 채굴할 때 금의 시장가격이 상승하는 경우 높은 이익을 거둘 수 있고, 시장가격이 하락하는 경우 금을 채굴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금의 시장가격에 따라 얼마나 이익인지를 고민할 특권은 광산에 투자한 기업가에게만 해당되는 행복한 고민이다. 기업가가 광산에 투자한 금액, 즉 Premium Cost를 굴뚝기업은 지불할 준비를 해야 한다. 경쟁기업의 인터넷기업 전이가 가속화될수록 Premium Cost는 상승한다. 벤처문화를 가진 미래에 도전적인 굴뚝기업이 적은 Premium Cost를 지불하고 가장 높은 이익을 취하게 될 것이다.

최근 두드러지는 B2B Marketplace 실패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유동성을 확보하지 못한 벤처기업이 Market Maker인 경우와 또 하나는 유동성이 확보되기 쉬어 성공을 예견하고 있었던 대기업 중심의 Market Maker들이다. B2B Marketplace 성공에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유동성이 확보된 대기업 중심의 Marketplace가 실패한 사례들은 굴뚝기업들이 인터넷기업으로 성공적으로 전이하지 못하였음을 시인하는 결과이다. 리더쉽 부재의 Marketplace로 좌초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였고 또는 공정한 게임을 보장하지 못하는 Marketplace로 시장조성이 어려워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 경우, 혹은 온라인과 오프라인간 이해관계로 첨예 대립하는 석유 B2B사업 등 다양한 원인과 갈등에서 표류하고 있다. 물론 굴뚝기업들이 벤처기업들의 특질을 이해하고 적용하지 못한 이유 외 B2B Marketplace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B2B 마케팅전략에 소홀한 점 역시 주요한 실패의 원인이다. 굴뚝기업 중심의 Marketplace는 유동성을 자신한 결과 B2B Marketplace 역시 B2B Community, B2B 제휴논리, B2B 협업, B2B 협력사관리방안, B2B Promotion 등 모든 면에서 낙제점을 면치 못하고 있다. 결국 굴뚝기업은 벤처기업 또는 인터넷 기업의 장점을 여전히 받아 들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예이다.

대기업을 닮아가야 하는 벤처기업
휘청거리는 벤처기업의 원인을 수익모델과 BM의 문제로 몰아붙이는 것은 위험하다. 성장가도를 달려가던 벤처기업이 휘청거리는 경우에는 분명히 사업모델 외 또 다른 이유가 존재한다. 벤처기업은 긍정적인 사고와 자유스러운 근무분위기, 위험을 안고 도전하는 정열적인 모험가 정신이 벤처의 특질이고 장점인 반면, 오만함과 무질서, 정리되지 않은 사업방향 역시 벤처의 단면이라고 생각하는 CEO가 있다면 천만의 말씀이다. 필자는 벤처기업 CEO를 만나게 되는 경우 대기업을 배우라고 말한다. 긍정적인 사고와 도전의식을 가지고 사업을 전개하되 검증된 행동양식을 갖추라는 말을 자주 한다. 대기업의 의사결정은 느리지만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는 무섭게 달려든다. 또한 결정된 사항을 추진함에 있어 검증된 행동양식을 사용한다. 많은 벤처들이 사업초창기에 인터넷 비즈니스 전문가집단을 대기업에서 영입하였고, 사업이 확장됨에 따라 전혀 무관해 보였던 인사, 총무, 홍보, 재무 분야 대기업 임직원을 영입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검증된 행동양식과 무서운 추진전략을 배우고 싶은 의지의 발로이다. 벤처처럼 생각하되 굴뚝기업처럼 행동하라는 말을 벤처기업에게 전달하고 싶다. 새로운 사업모델이나 서비스모델을 들고 나와 벤처를 시작하는 벤처기업가들은 긍정적인 사고로 사업모델을 작성하되 철저히 검증된 고객서비스전략과 마케팅전략을 도입하고 하나 하나 단계적인 성공을 밞아 나가야 한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벤처기업이나 벤처기업은 무조건 자유로워야 한다는 마인드는 위험천만이다. 또한 최근 유행처럼 번져가는 인터넷기업의 무조건적인 해외진출전략이나 해외투자를 받고 싶어하는 벤처기업의 기업운영전략과 사업실행전략을 살펴보면 딱하기 그지 없다. 고객이 결국 선택하는 것은 굴뚝기업이나 벤처기업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가치를 전달하는 기업에게 의미를 부여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Creativity와 Process가 공존하는 세상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결합이라는 Click & Mortar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있지만, 굴뚝기업과 벤처기업의 문화 융합은 창의성과 프로세스의 결합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인터넷 비즈니스 초기에 창의성이 강조되고 웹사이트는 디자인이 우선하던 단계를 지나 B2B 사이트 태동 등 복잡하고 정교해지는 수익모델과 사업모델은 프로세스를 추구하게 되었다. 인터넷문화와 굴뚝문화의 결합, 즉 창의성과 프로세스의 결합이 웹사이트에 투영되어야만 수익이 발생할 수 있다는 논리는 이제 일반화되어가고 있어 보인다. 웹 에이전시 역시 창의성과 전략이 동반해야 성공적인 웹사이트를 고객에게 전달할 수 있고 웹사이트는 창의성이 돋보이는 사업모델과, 창의성을 기업 프로세스와 연동하여 고객서비스 강화방안과 수익모델 확보방안을 지향하고 있다. 벤처기업도 굴뚝기업 조직문화의 장점을 배우려고 노력해야 하며, 의사결정 지연 등의 불합리를 피하기 위해 분사노력이 지속적으로 추진중이고 벤처기업은 굴뚝기업의 뚝심을 배우기 위해 인재확보에 노력중이다.

디지털 시대의 엘리트인 보보스 (Bourgeois Bohemians)가 바로 인터넷문화와 굴뚝문화가 결합된 인재상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보스턴에 있는 인터넷 컨설팅회사 제퍼는 입사지원자들에게 레고플레이를 해보라는 등으로 창의성을 평가하고 있으며 코닥은 게임과 장난감, 비디오가 설치된 유머방을 설치하고, 경영진이 문화 개발을 위해 직접 고른 비디오를 직원들에게 보여주는 회사도 있고 제록스에서는 우드스탁 배우기 (Learning Woodstock)라는 행사를 진행하는데 천장에 달과 별과 행성들이 걸려 있는 어두운 방에서 진행한다고 한다. 반면 국내 선두에 서 있는 벤처기업들은 MBO (Management by Objectives) 수립으로 철저한 목표관리, 조직진단 컨설팅 의뢰, 합리적 사고능력 배양을 위한 워크샵, 예절교육, 국제화매너교육, 어학교육 등 조직력 강화 프로그램과 전문가로서 배워야 할 비전문분야 교육 프로그램 등에 열심이다.

신처럼 창조하고, 왕처럼 명령하고, 노예처럼 일하라.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의 성공법칙 (규 가와사키 저)”의 주 골자가 굴뚝문화와 벤처문화의 융합이 제시하는 업무양태라고 생각한다. 신처럼 창조하라, 왕처럼 명령하라, 노예처럼 일하라는 다소 과격한 발언이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세 구절은 벤처업계 몇 CEO가 생활철학으로 삼고 있기도 하다). “신처럼 창조하라”는 말은 혁신적인 신제품 또는 서비스를 개발하는 창의성에 관한 방법으로 스스로 Rule을 만들어 가는 챔피언의 길을 가라는 내용으로 벤처문화의 장점을 설명하고 있으며, “왕처럼 명령하라”는 혁신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근성, 통찰력, 시장진입에 성공하기 위한 극복방안과 방어전략 등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대기업의 행동양식을 설명하고 있다. “노예처럼 일하라”는 뜻은 성공을 꿈꾸는 인터넷기업 또는 대기업은 고객이라는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자신의 일에 냉혹할 정도로 몰두해야 하며 습득한 모든 정보를 동료들과 심지어는 경쟁자들과도 공유하라고 조언한다.

인터넷기업, 굴뚝기업, 그리고 벤처기업 모두 서로 서로를 배워야 하며 공존철학을 모색하여야 할 것이고, 신처럼 창조하는 창의력, 왕처럼 명령하고 추진하는 추진력과 프로세스, 열심히 일하고 지식을 공유하는 임직원이 있는 기업만이 이제 살아 남을 것으로 예상된다.

* 이영곤, "굴뚝문화와 벤처문화의 융합", Enable, 2001. 3.
* 참으로 옜날에 쓴 글이네요. 자료 정리차원에서 여기로 옮겨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