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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독서후기]지성에서 영성으로

시칠리아노 2012. 12. 23. 12:47

* 제목 : 지성에서 영성으로
* 출판사 : 열림원
* 저자 : 이어령
* 독서기간 : 2012년 12월 16~18일
* 초판 연월일 : 2010년 2월 25일

* 감상

2010년 초 반포의 고속버스터미널. 책이나 음료를 파는 가게의 주인께서 지나가는 승객들에게 하나의 책을 추천한다. 지성의 상징인 이어령 교수께서 영성으로 돌아섰다는 이야기를 담아 놓은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이다. 이 책은 그렇게 처음 만났다. 이미 기독교 신자였던 내게는 크게 와 닿지 않는 주제이니 별 생각없이 지나치게 되었다.

그 책을 3년이 다 되어 갈 무렵에 만나게 되었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전환이 된 과정이나 결과가 궁금했던 것은 아니다. 그져 이어령 교수의 멋진 글을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었고 2010년 초 터미널에서의 호객이 기억나 이 책을 고른것 일 뿐.

담담하게 써 내려간 글이다. 감정에 차 올라 독자를 격정적인 순간으로 끌고 들어가는 억지가 없다. 대부분의 간증과 기독교 서적들이 강제로 독자의 옷깃을 끌고서 화자의 생각과 똑같이 느끼도록 강요하는 글인 반면, 이어령 교수의 글은 그져 자신의 감정 상태를 하나씩 설명할 뿐이다. 

그렇다고 지성에서 영성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철학적이거나 교조적으로 설명하지도 않는다. 영성을 갖기 전 혼자서 교토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외로움. 딸의 아픔과 함께 하면서 느낀 분노와 약속. 그리고 세례를 받은 이후의 삶 등 겪어가고 느꼈던 것을 차분하게 설명한다.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저자의 상황과 생각을 얇은 종이가 물을 머금듯 흡수하게 된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넘어가는 사람이 어디 한 둘이며, 그게 뉴스거리가 될 것인가 싶지만 70이 넘어 세례를 받는 이어령 교수의 사례는 달랐나 보다. 언론에서 한 사람의 회심이 이리 뉴스거리가 될 것인가 싶기는 하다. 

무신론자가 세례를 받게 되는 과정까지를 지켜보면서 신앙심을 찾아도 좋다. 혹은 이어령 교수의 멋진 글을 되새겨 볼 요량으로 이 책을 일독해도 좋다. 아니면 노교수의 회심을 "외로움"이라는 관점에서만 보아도 좋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 책을 보더라도 만족의 정도는 기대 이상일 것이라고 자신한다.

* 주요내용

나에게 있어서 시와 종교는 동전의 안과 밖과 같은 것이었지요. (p.16)

멕시코의 감독이 만든 영화 [21그램]이라는 것이 있었지만 인간 영혼의 무게는 라면 한 젖가락 정보밖에 안된다는 말이 있지요. (p 23)

'메멘토(memento)'는 라틴말로 '기억하다, 생삭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모리(mori)'는 죽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메멘토 모리'라는 말은 '죽음을 생각하라' '죽는다는 걸 생각하며 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p. 35)

살찐 새는 날지 못합니다. 날기 위해, 학이 되기 위해, 옜날 우리 선비님들처럼 약초나 캐먹고 살아가는 은둔처라도 찾아봐야겠습니다. (p 77)

원래 문화란 말은 문치교화의 준말입니다. 무력이나 금력이 아니라 글의 힘으로 상대방을 교화시켜 다시리는 방법이 곧 문화란 말의 원뜻이었습니다. (p. 96)

오늘날의 CEO는 지휘봉을 든 교향악단의 컨덕터가 되기보다는 북채를 든 고수가 되어야만 기업을 끌고 가게 됩니다. (p. 101)

오늘의 시대에는 독선적인 지도자도 관리형 지도자도 양때들을 몰기 힘듭니다. 양떼들은 침묵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진정한 양치기는 앞에도 뒤에도 서지 않습니다. 양떼들의 한복판에서 함께 움직입니다. 뒤에도 앞에도 아닌 무리 한가운데에서 말입니다. 이것이 현대의 지도자상입니다. (p. 106)

영어에 플런지(Plunge)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팍 던져 넣는다'는 의미입니다. 영성의 세계는 이해하거나 말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절망을 계기로 영성의 세계로 던져 넣어지는 것입니다. (p. 153)

인간의 삶은 주고받는 삶입니다. 그런데 주고받는 그 주제와 객체 사이에는 아무리 다가서도 얇은 빈틈이 생깁니다. 전위적인 화가 마르셀 뒤샹은 그것을 '앵프라맹스(inframince)라고 불렀습니다. ... 앵프라맹스라고 하면 '눈으로는 식별할 수 없는 초박형의 상태'를 뜻하는 말이 됩니다. (p. 157)

"하느님의 나리에서는 앞에 온 자가 뒤에 서고, 뒤에 선 자가 앞에 서느리라." (p 238)

로맹 롤랑은 인생이란 15분 늦게 들어간 영화관과 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p. 296)

 * 저자소개

1934년 충남 온양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 2000년 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장,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 식전과 문화 행사, 1993년 대전엑스포의 문화 행사와 리사이클관을 주도했고,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냈다. 2010년 ‘디지로그 사물놀이’를 기획하고 공연했으며, 2011년 새 시대의 패러다임으로 ‘생명자본주의’를 선언했다. 2012년 현재 중앙일보 상임고문과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축소지향의 일본인』, 『디지로그』, 『젊음의 탄생』, 『생각』, 『지성에서 영성으로』 등이 있고, 소설 『장군의 수염』, 『암살자』, 『환각의 다리』, 『무익조』 외 다수와 전집 『한국과 한국인』(전6권), 『이어령 전집』(전20권), 『생각에 날개를 달자』(전12권), 『이어령 라이브러리』(전30권)가 있다. 이 중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중국어·프랑스어·영어 등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 책소개

시대의 지성 이어령이 전하는 영성에 대한 참회론적 메시지.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2007년 7월 24일 세례를 받기 위해 무릎을 꿇었다. 무엇이 그를 이성과 지성의 세계에서 영성의 세계로 떠나게 만들었을까. 이 책은 크리스천 이어령의 지성에서 영성의 길로 나아가는 과정과 영성의 세계에 들어오면서 과정과 그에 따른 솔직한 생각에 대해서 세세하고 기록하고 있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저자의 일기와 강연, 기사와 편지글로 이뤄져 있다. 세례를 받기 전 영성의 단계로 들어가기 직전 교토에서와 결정적으로 영성의 단계에 들어서는 하와이, 한국에서의 순서로 진행된다. 그리고 딸 이민아의 간증내용과 여러 언론사에서 인터뷰한 내용들을 정리한 글들도 함께 실려 있다.